레기오네스 카타에기스(Legiones Cataegis) - 썬더워리어의 하이고딕 명
Heralds of the Siege An Anthology
통합의 꿈 - Dream of Unity
Nick Kyme
우리는 천둥이요,
우리는 번개이니라,
우리는 그분의 으뜸이었으나,
이제는 죽은 자들 사이에 있노라,
우리는 너무나 오래 살았기에,
이제 우리는 죽기를 바라네,
바라는 유일한 죽음은,
명예로운 죽음일지니.
- 다렌 헤룩(Dahren Heruk). 명예로운 죽음의 찬가
-----------------------------------
아래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본 순간, 나는 카베Kabe가 죽을 것이라는걸 알았다. 그리고 뭐든간에 하려고 해도 나는 무력했다.
그는 굴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포효했고, 부서진 턱은 도전의 외침을 왜곡시키고 있었다. 카베를 죽이려는 자는 겁내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카베가 그의 갑주에 피를 뱉었지만, 황금갑옷의 전사는 자극받지 않았다.
대신 그는 창을 들어 올렸고, 카베는 이에 맞서 자신의 펄션을 들어 대비했다. 펄션의 칼날은 상대 전사의 갑옷에 별 효과가 없는 공격을 연속으로 가한 결과 삐죽삐죽한 톱날처럼 변해 있었다.
카베는 지는 법을 몰랐다. 그는 평생 단 한 번도 물러난 적이 없었다.
키예반 루스Kievan Rus*의 올리가르히* 들이 검은 성채에서 핵무기들을 비처럼 퍼부었을 때도, 방사능 불길로 뒤덮인 시비르Sibir 얼음 평원에서도, 카베는 전진했었다. 그는 아비쓰나Abyssna* 공성전 동안 휴식없이 싸웠고, 호쓰 그렌달Hoth Grendal의 군벌-씨족들을 정복하기 위해 알비아Albia*의 전역을 행군했었다.
“통합을 위해!” 카베가 포효했다. 그는 경례로서 망가진 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
그는 돌격했으나, 왼쪽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고 그는 미끄러졌다. 그의 육신은 그의 정신만큼 완고하지 못 했던 것이다.
창이 그를 관통한 순간 카베는 그 자리에 정지했다. 그의 갑주는 손쉽게 관통당했다. 창대가 그의 배에 박혀 있었고, 창날은 그의 등을 뚫고 반대편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그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잠시 꿰뚫린채 매달려 있었다. 금색 갑주를 입은 전사가 그의 몸을 걷어차 창을 뽑아냈다. 충격과 불신으로 짓눌린 침묵이 공기중에 맴돌았다.
이윽고 관중들이 환호했다. 투기장에 빛이 넘쳤다. 차갑고 눈부신 소듐(나트륨) 광선이 얕은 모래 구덩이와 반쯤 찌그러진 뼈들 위로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카베의 몸 아래에 피가 고이고 있었다. 그는 몸을 떨고 있었고, 아직 살아있었다. 마치 육지에 나온 물고기처럼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타리가타Tarrigata가 투덜거렸다. “끝났구만.”
내 옆에 서 있던 노인은 갑자기 확 늙은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가 카베에게 걸었다가 잃게 될 돈에 대한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의 양성소가 이제 막 또 다른 투사를 잃게 생겨서일지도 모른다. 한 때 훌륭했던 그의 의복은 최근 낡아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주위로 몰려드는 관중들을 무시하면서, 투기장의 방어막 쪽으로 몸을 숙이는 동시에 타리가타를 슬쩍 곁눈질했다.
그의 얼굴에 나타난 그늘은 그저 줄어들기만 하는 수익 외에 더 깊은 근심이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다. 최근 투기장을 후원하는 사람들의 수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다.
후원자들은 다른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전쟁에 대한 걱정, 살인과 폭동에 대한 걱정. 남은 후원자들은 투기장에서 그러한 걱정을 잊고 있었다.
황금 갑주의 전사가 창을 빙빙 돌리며 전진했고, 그는 카베를 내리 찌르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살인에 대한 기대감으로 관중들은 더 크게 소리쳤다.
“헤룩, 끝났나?” 타리가타가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가는 손가락들이 내 드러난 팔에 닿는 걸 느꼈다.
“관중들이 항의하는 소리가 아직 들리는군. 끝났나? 저 크로노-검투사chrono-gladiator가 그를 아직도 그를 죽이지 않았나?”
“여기 있어라.” 내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보호 장벽을 뛰어넘어 투기장 안으로 뛰어들때 타리가타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것을 느꼈다. 내가 착지하자 발밑의 모래가 흩날렸다.
몇몇 관중들이 나를 알아보고선 내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들으며 공허한 영광의 냉기를 느꼈다.
전투는 영광스러웠다. 아라랏 산Mount Ararat에서 아릭 타라니스Arik Taranis*가 번개의 깃발을 들어올리며 통합을 선언한 순간, 그 순간은 영광스러웠다. 이것은 시궁창의 영광이었다. 이곳에 명예는 없었다.
황금 갑옷의 전사는 투기장에 또 다른 투사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채 창을 내리 찔렀다. 카베는 창날이 허벅지에 박히자 비명을 질렀다. 두 번째의 찌르기가 그의 어깨를 뚫자 그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죽일거라면, 그냥 죽여라.” 나는 거대한 전사의 등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우리 모두는 이미 충분히 고통받아왔다. 이건 불필요했다.
관중들이 더 크게 외쳐댔고 그들의 얼굴은 이제 어둠에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환한 소듐 조명에 의해 반쯤 눈이 먼 상태였다.
내 눈은 타리가타보다는 나았으나, 예전만하지 못했다. 전사가 돌아서는 동안 나는 두번 눈을 깜빡이며 빛에 적응하려 했다. 크로노-검투사는 약물로 증대된 비대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으며 황금 갑주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내 앞의 극도로 부풀어오른 전사를 보며 그분의 아뎁투스 쿠스토데스에 대한 패러디 같다는 생각을 했고, 미소를 짓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 구렁텅이 아래에서, 우리는 옥좌의 빛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익살을 발견하고 있었다.
전사의 이마에 달린 죽음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주인인 라딕 클레브Radik Clev는 근처에서 열쇠를 들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크로노 검투사는 승리하면 죽음의 시계를 돌릴 수 있는 열쇠를 볼 수 있을것이다. 더 살기위해 더 산다. 그것이 크로노 검투사들의 방식이었다.
나는 그저 하찮은 명예를 위해 싸울 뿐. 생명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잇고자 하는 시도를 누가 막겠는가?
창은 방향을 틀었고, 쥐는 방식이 불필요하리만치 정교해졌다. 그리고 그 창끝은 나를 향했다. 크로노-검투사의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흰자에 선 핏발은 그의 광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죽음의 시계가 째깍, 째깍하고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심장박동처럼.
그는 나를 향해 으르렁댔고, 그 소리는 인간보다는 짐승과도 같았다. 하지만 나 역시,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은 아니었다.
나는 옛 본능을 일깨우듯 야성적으로 으르렁대며 이를 드러냈고, 칼폭이 넓은 검을 뽑았다. 내 엄지가 역장을 작동시켰고, 역장이 위태롭게 몇 번 깜박이더니 안정적으로 파지직 거렸다.
열기와 오존이 콧구멍을 가득 채웠다. 기름과 피의 냄새도 있었지만 그것은 크로노-검투사에게서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카베가 흘린 피에서도 나는 것이었다. 나는 망가진 펄션으로 힘없이 손을 뻗으려는 카베를 볼 수 있었다.
“너는 그냥 그를 죽였어야 했다.” 내가 말했다.
검투사가 돌진했다.
나는 피하기 위해 칼을 뒤로 휘두르며 굴렀다. 나는 관중들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를 들었고, 내 머리를 몇 인치 차이로 스쳐지나가는 창을 느꼈다. 다시 일어선 나는 간신히 몸을 돌려 나를 찌르기 직전인 창을 볼 수 있었다. 재빨리 창을 옆으로 쳐내 비껴냈지만, 운이 좋았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나는 너무나 느렸다.
두 번째 찌르기는 내 검을 거의 비틀어 튕겨낼 뻔 했고, 거기에 실린 힘은 내 뒤꿈치가 흔들릴 만큼 강렬했다. 나는 다시 굴렀고, 그제서야 늙은 뼈와 지친 근육이 말을 듣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빠르게 일어났고, 크로노-검투사의 수비범위 안쪽이자 창의 사정거리 안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나는 검으로 검투사의 팔, 그것도 팔오금을 거칠게 베었다. 치명적인 부상은 아니었지만, 그곳은 그의 갑주의 약점이었고 내 검은 깊이 파고들었다. 크로노-검투사는 울부짖었고 창을 쥔 그의 손이 후들거렸다. 힘줄이 비명지를 때 길고 무거운 걸 들고 있긴 힘들다.
그는 창대를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나는 이에 응수했다고 생각했지만, 충격 수류탄을 맞은 것처럼 튕겨나가 투기장 바닥에 처박혔다.
관중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들을 무시했다.
내 흐릿한 시야가 적에게 고정되었다.
기름과 피를 흘리며, 크로노 검투사는 나를 향해 쿵쿵거리며 다가왔다. 그는 창을 몸쪽으로 바짝 붙들어쥐고 다른 손으로 그걸 받치고 있었다. 이것으로 사거리는 줄어든 셈이었다. 그가 6피트를 사이를 두고 나를 찌르려는 순간, 나는 검을 던졌다.
검이 허공에서 회전했고, 약간 구부러진 칼끝과 무거운 폼멜이 투척에 가속도를 더해주었다. 검은 검투사의 중심을 때렸고, 황금흉판에 구멍을 낸 다음 그 안쪽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는 말조차 못하고 가슴을 응시했다. 그는 마치 영상이 갑자기 멈춘 것처럼 창을 쥐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털썩 무릎을 꿇으며 무기를 떨어트렸다.
나는 재빨리 카베의 펄션을 집어든 후 걸어가서 바로 크로노-검투사의 머리를 베었다. 죽음의 시계가 0을 가리키며 이제는 의미없을 파동을 심장에 보냈다. 그가 머리를 잃지만 않았어도 그 파동으로 크로노-검투사는 죽었을 것이다.
관중들은 이 극적인 광경 앞에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들은 마구 고함 지르거나 패자를 대신하는 분노를 토해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내 검을 다시 집어든 후 카베에게 검을 돌려주기 위해 그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피웅덩이를 내려다보았고 거기에 비친 내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큰 키, 두꺼운 근육질의 몸에 가죽 반팔 갑옷을 걸친 내 모습은 전사의 그것이었다. 얼굴의 흉터는 내게 개성을 부여했고, 짧게 깎은 금발은 내가 군인 출신임을 말하고 있었다. 왼쪽 어깨에 새겨진 번개 문신을 제외하면 내 몸엔 어떤 표식도 없었다.
내 푸른 두눈은 약간의 늙은 활력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전통적인 기준에서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허영심은 내 약점이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허영심이 피아를 가리지 않고 끼치는 영향을 보아왔다. 잘생겼다고 그것이 그들의 죽음을 바꿔놓진 못했다. 죽음은 추했다. 죽음은 외모에 아무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형제여...” 나는 펄션을 카베의 손에 부드럽게 쥐어주며 말했다.
그는 안정된 것으로 보였으나, 그의 입은 여전히 무언가의 연설을 헛되이 따라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폐에 피가 고여 있다, 카베. 말하지 마라. 가만히 있어라. 이제 거의 끝났다.”
그는 나를 바라보았고 그의 두 눈에 깃든 두려움은 무언가 평온한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의 심장께에 칼끝을 댔다. 다른 손으로, 나는 그의 왼쪽 어깨에 새겨진 빛바랜 번개 문신을 만졌다.
“명예로운 죽음...” 나는 속삭였다. 카베는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검을 찔렀고, 끝이났다.
-----------
* 우크라이나 지방. 현대 러시아의 기득권층 올리가르히Олигархи 에서 따온 것 인듯.
* 나일강 상류 동북아프리카 지방의 아비시니아에서 따온 것 인듯.
* 렉시카넘에 의하면 북대서양 지방.
* 전설에 의하면 썬더 리전의 군기를 쥐고 아라랏 산에서 죽어서 Thunder-Bearer로 불렸다는 썬더 워리어 지휘관. 저렇게 쓴 이유는 The Outcast dead에서 생존해 있음이 밝혀져서.
아마 The Oucast Dead 다음으로 썬더 워리어 잔당이 주역으로 등장했던 소설로 아는데, 여기서 여러가지를 알 수 있음.
1. 썬더 리전 숙청 이후, (당연하지만)황제는 이들이 여전히 충성하더라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끝까지 죽이려 들지도 않았다. 아마 시급한 대성전에 집중하고자 한 듯.
2. 썬더 워리어들은 Valdor: Birth of the Imperium에서 묘사된 것처럼 저항을 시도하긴 했음. 그러나 대체로 황제에게 여전히 충성했음.
3. 썬더 워리어나 아스타르테스처럼 비교적 안정적인 기술의 강화인간 말고도 시리즈 내내 여러차례 언급된 강화인간이 또 등장함.
4. 황성인 테라도 마냥 살기좋은 곳은 아니었으며, 빈민과 갱단 및 카오스 컬트 등이 존재했다.(이건 이미 Nemesis에서 어느정도 묘사 됨.)
그리고 이들의 불만을 낮추기위해 의도된 것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볼거리'로 투기장이 운영되었음. 마치 고대 로마 시대에 빵을 뿌리고 콜로세움을 운영했던 것처럼.
40k에서도 길리먼 귀환 후 테라의 부패 고위층을 숙청한 것 외에도 카오스/외계인/잡종 컬트 및 돌연변이 갱단 등 불온 분자를 정리한 프라이마크의 징벌Primarch's Scourge 사건을 생각해보면 대성전 때도 마냥 살기 좋았던 것은 아닌듯.
통합의 꿈 - 2
타리가타는 투기장 벽의 반대편에서 나와 만났다. 삭막한 불빛 속에서 그는 더욱 말라 보여서, 그의 피부가 반투명해보일 지경이었다.
그는 내가 카베의 시신을 끌고 오자 코를 킁킁대며 공기를 들이마시더니, 머리를 모로 기울이고 내쪽으로 왼쪽 귀를 향했다.
“그거 카베인가? 냄새가 고약하군. 이미 죽은 것 같은데.”
나는 죽은 카베를 오른쪽 어깨로 둘러매고 얼굴을 찡그리며 그를 향해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
“썬더 리전에 경의를 보여라.” 나는 이를 악물고 나직이 말했다.
키와 덩치 모든 면에서 내가 엄청난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타리가타는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하! 넌 지금 검투사야, 헤룩.”
“노인네, 내가 맹세컨대 네-” 나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손님이 더 적었어.” 타리가타는 내 공허한 위협을 마치 자신의 옷깃에 앉은 파리를 때려 쫒듯 흘려 넘겼다. “관중들도 더 조용했고.”
“어디든 줄어들고 있지.” 내가 말했다. “위대하신 썬더 리전조차도 관중을 끌어 모을 순 없다고, 엉?”
“끌어모을 관중이 없어.” 타리가타가 말했다. 그는 코를 킁킁 대었고, 메마르고 늙은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공기 중에 공포가 있어. 어둠이 주변에 가득해.”
예전부터 타리가타의 음모론을 여러번 들어왔던 터라,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게다가,” 노인은 얼굴에 잔인한 미소를 띄우며 말을 이어나갔다. “ '너'는 군단이 아니야. 아라랏 이후로 너는 군단이 아니게 됐다고.”
“그가 맞아, 헤룩. 우린 이제 아무 것도 아니야. 단지 투기장의 투사들일 뿐이지. 그리고 타리가타는 우리의 고용주*고.”
“우린 그 이상의 존재야, 베즈Vez.” 난 막 앞으로 걸어온 수염 난 거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베줄라 불트Vezulah Vult는 내가 알거나 죽인 어떤 전사보다도 많은 흉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흉터를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나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컸으며, 그의 몸통과 어깨는 마치 역삼각형 같았다.
“정말 그런가, 다렌*?”
나는 그를 쏘아보았다. “최소한, 우리는 여기에 살아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카베를 내려놓았다. “날 좀 도와주게.”
투기장 주변에선, 소수의 관중들이 죽은 검투사를 보기위해 남아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의 비참한 생활로, 구렁텅이*로 돌아가기 위해 이미 흩어지고 있었다.
“낭비구만,” 타리가타가 침을 뱉었다. 그리고는 허리띠에 달린 동전 주머니를 짤랑거렸다. 그는 주머니를 세번 흔들고는, 귀를 기울였다.
“적군.” 내가 말했다.
“네가 말 안해도 알아!” 타리가타가 내 주변을 빙빙 돌며 떽떽거렸다.
그는 쭈글쭈글한 손가락으로 자신의 텅 빈 두 눈구멍을 찔렀다. “내가 두 눈을 잃었을지언정, 여전히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어. 저 위에 계신 그 분의 손길을 받았거든, 나는.” 그가 짙어지는 스모그 너머의 하늘에 손짓하며 말했다.
그의 손짓을 따라간 내 두 눈엔 신처럼 어른거리는 동상들의 희미한 형상이 비쳤다.
“네 두 눈은 아스트로패스로서 불타버리지 않았나, 타리가타.” 내가 말했다.
“그게 이 구렁텅이에서라도 네가 사악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내 말을 잘들어야하는 이유야. 나는 저 너머로부터 오는.... 놈들을 봤단 말야.”
“그리고 너는 남은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해충처럼 쫓기고 있고.” 내가 덧붙였다.
타리가타는 보기 흉한 미소를 지으며 누렇게 된 이빨을 드러냈다. “그래, 하지만 넌 아직도 그분을 섬기잖아. 안 그래?”
“군단은 언제나 그분을 섬긴다.” 베줄라가 답했다. 허리에 매단 도끼로 손을 뻗는 그의 목소리가 다르게 들렸다.
나는 그의 팔을 붙들었다. “진정해라, 형제.” 나는 그에게 단호히 말했다. “전쟁은 끝났어.”
그는 날 보고있었으나 시선은 그 너머의 지나간 날들의 전장을 보고있었다. 그의 두눈은 흐릿하고 깜빡이지 않고있었다.
“칼라간Kalagann이 황무지에 자신의 군을 소집했다...”
그는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고 나는 그를 붙잡고 있는 손을 더 꽉쥐었다. 나의 옛 군단의 반지가 그의 피부에 자국을 냈다.
“우르쉬Ursh의 무리들은 오늘 쓰러질 것이다!”
관중들 사이의 몇몇 낙오자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시비르의 학살자들은 황제 폐하께 항복할 것이다!”
“그들은 이미 항복했어, 오래 전에.” 내가 말했다. “정신을 차려라, 베즈. 나를 봐라. 나를 보란 말이다.”
그는 정신을 차리더니 눈을 한 번 깜빡인 후, 도끼를 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나는 그를 놓아주었다.
“내가 또 과거로 갔었나?” 그가 물었다.
나는 끄덕였다.
“이번엔 어디로?”
“우르쉬, 시비르 얼음 평원.”
베쥴라는 방금의 플래시백*으로 온전한 정신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 계산이라도 하듯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돌아온 건가, 형제?” 내가 물었다. “지금 이 곳으로?”
“그래...그래...”
나는 타리가타가 내 뒤에서 안도하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가 로브 아래에 들고있던 라드 피스톨의 전원이 꺼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그것을 한 번도 쏜적이 없었고, 나는 그 열화된 에너지 코일에서 흘러나오는 치명적인 방사능이 이 늙은이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떼놓는 일이 없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관중들은 실망한 듯 걸음을 옮겼다.
낡아빠진 판자촌은 투기장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Swathe로 알려진 이곳은 황국 외곽 거리까지 수마일에 걸쳐 뻗어있었다. Swathe는 부서진 함선, 산업용 화물 컨테이너, 장갑판 그리고 스모그로 질식할듯한 하늘에서 떨어진 잡다한 모든것들의 덩어리였다.
타리가타의 거주지는 하층 계곡에서도 가장 거대했고,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지어졌다. 집주인 만큼이나, 그 집은 더 번창하던 시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제 거지왕에서 그냥 거지로 빠르게 되돌아가고있었다.
“그를 위로 올려놔.” 타리가타가 카베의 시신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용할 수 있는건 챙기고 나머지는 태워버려. 난 시체 뒤지는 것들이 주변에 돌아다니는걸 원치 않아.” 그는 몸을 돌린 후 귀를 기울이더니, 다시 코를 킁킁 거렸다.
“그리고 대체 가이록Gairok은 어디에 있는 거야? 지금쯤은 밀주냄세를 맡아야 했는데. 망할 자식.”
화강암 계단 입구의 마당 차양막 아래에는 무거운 나무 판이 놓여있었다. 나무는 귀했다, 특히나 Swathe에선 더더욱. 타리가타는 그것을 부검대로 사용했다. 그는 나무가 피를 빨아들인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랬다. 나무 판은 군데군데 베니어판을 덧댄듯 검은 얼룩으로 가득했다.
베줄라와 나는 카베의 시체를 그 위에 올렸다.
“다음 싸움까지 몇 시간도 남지 않았어.” 나는 해부대 옆에 설치된 받침대에서 톱과 다른 수술 도구들을 꺼내들며 말했다.
나는 그 중 하나를 베줄라에게 건네 그가 자르기를 시작하게 했다. “그는 여기로 올 거다.”
“그러는 게 좋을 거야.” 타리가타가 말했다. “한 명이 죽었고 쇼까지 못 한다면...난 망하고 말거야!”
“이 바닥에서, 우리 중 누구든지 현상황과 망하는것에 무슨 차이가 있다고 말할 사람이 있나?” 나는 투덜거리며, 타리가타가 계단을 올라 거주지로 들아가는 걸 지켜보았다.
베줄라는 작업했다. 그는 이미 카베의 갑옷과 살가죽을 벗긴 후 그의 장기들을 채취하고 있었다.
우리들 중 아직 남아있는 이들은 시체 파먹는 악귀나 다름없었다.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은 과거 전우였던 형제들의 죽음,과 죽은 그들의 신체부위를 성공적으로 이식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타리가타는 우리의 고용주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장기들을 이식하는 데 필요한 도구와 기술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최소한 그러한 점에서, 우리의 관계는 상호 의존적이었다.
우리 모두가 어떤 지경이 되었는지에 생각하던 도중, 나는 시선을 들어 차양막의 해진 틈새 너머를 보았다.
(중략. 대충 매연층 아래 Swathe로 불리는 판자촌인 구렁텅이Maw 묘사.)
이 아래에서 보는 테라는 너무나 다르게 보였다.
“나는 여전히 영광의 꿈을 꾼다, 다렌.” 베줄라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나를 현재로 끌어내었다. 나는 그가 다시 플래시백을 일으킬까봐 우려스러웠으나, 카베를 해체하는 그의 두 눈은 맑았다.
기계로 대체한 신체부위는 물론 번들거리는 장기들이 쓸모없는 내장들 사이에 놓여지고 있었다. 일은, 그것이 피를 묻히는 일 일지라도, 정신을 집중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그는 잠시 멈췄다. 칼끝에선 피섞인 체액 방울이 뚝뚝 떨어졌고, 그의 팔은 팔꿈치까지 시뻘건 피범벅이었다.
“가끔은 꿈과 살아있는 현재 중에 어느것이 현실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
“이해한다.”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전부, 너무나 잘 이해하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는 알고 있었다. 골수 속에서, 암으로 시달리는 나의 깊은 곳에서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좋은 시절은 지나갔어. 나도 그건 안다.” 베줄라가 말했다.
“폭풍의 날들, 통합의 날들말이야. 그 때는 살육의 나날이었고, 유혈의 나날이었으며, 전쟁과 정복의 나날이었지. 제국들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었고, 그들이 우리 앞에 무릎을 꿇었었어...”
그는 말을 멈췄다. 톱의 손잡이를 쥔 손의 관절들이 새하얗게 변했지만, 톱질은 하지않았다. “그 시절이 그리워.”
“나도 마찬가지다, 베즈. 하지만 우린 예전의 우리가 아니야. 우리는 너무 오래 살았어. 단지 우리 중 몇몇은 죽기에 너무 고집스러운 것일 뿐이다.”
나는 카베의 기계 부위들인 낡은 사이버네틱스 부품들을 챙겼다. 그리고 그것들을 낡은 수동식 펌프를 사용해 세척하기 시작했다.
흘러나오는 액체는 음용하기엔 부적합했고, 피부를 자극했지만 피를 씻어내기엔 아주 적합했다.
장기들은 커다란 의약용 플라스크로 옮겨졌다. 그리고 포름알데히드, 글루다르알데히드 및 메탄올 등의 점성 용액속에서 보존될 것이다. 이것도 타리가타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그것들은 네가 맡도록해.” 베줄라가 말했다. “태워버리는 건 나 혼자서도 할수 있어.” 소각로는 타리가타의 사유지 뒤편에 있었다. 카베의 마지막 휴식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기를 담은 플라스크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너는 너 자신인가, 형제?”
“나는 나다.”
“만약 그렇지 않게 된다면?”
베줄라는 나와 시선을 맞췄다. 그의 두 눈은 흔들림이 없었으나, 체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게 명예로운 죽음을 내려주게.”
“명예로운 죽음,” 내가 답했다. 그리고 나는 타리가타의 거주지로 향했다.
거주지 내의 어둠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곳은 비좁고 천장이 너무 낮았기에, 나는 몸을 굽히고 있어야만했다.
타리가타는 이것저것 모아두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옛 검투사들의 기계 부위들, 그리고 조금씩 쪼그라들고 있는 장기들이 소금기 있는 액체에 절여져있는 병들이 진열된 선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쓰임새에 상관없이 그것들을 전부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찌그러진 플라스텍 의자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 계산기 위로 얼굴을 찌푸리고있는 그를 발견했다.
“라딕 클레브는 자신의 손실에 대한 보상을 원할 거야.” 그가 장죽을 꺼내기 위해 몸을 뒤로 젖히며 말했다. 길쭉한 담뱃대에서 연기 기둥이 피어올랐고, 타리가타가 한 모금 빨아들이자 담배통에 담긴 연초가 밝게 타올랐다.
“결국 이 빚은 돌고돌아 너에게로 지워질거야.”
“미안하다, 고용주.” 나는 찾을수 있었던 빈 공간에 의약용 플라스크들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가 그의 검투사를 죽였으니, 그래야만하지,” 타리가타가 덧붙였다.
“또한 카베의 시합을 무단으로 중단시켰지. 그것 역시도, 내가 돈을 지불해야 한단 말이지.”
“다시 말하지만, 미안하다.”
“미안하다면 빚이 갚아지는줄 아나!” 그는 떽떽거렸으나, 곧 발작적인 기침이 그의 몸을 엄습했다.
나는 타리가타를 도우려 다가갔으나 그는 떨리는 손으로 나를 물리쳤다. 그는 소매로 입을 닦은 후 발작이 끝나자 떨리는 장죽을 길게 한 모금 빨았다.
“내가 전부 배상하도록 하지.” 내가 말했다.
타리가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Swathe로 가. 가이록을 찾아와. 그를 여기로 데려오지 않으면 장기 공급이 끊길 거야.”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이었다.
“내 약속하지, 고용주.” 나는 떠나기 전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난 네 약속이니 명예니 다 상관없어, 헤룩. 그냥 그를 데려와. 그리고 빨리 데려오도록 해.”
매연층 바로 위에서 한 함선이 맴돌고 있었다. 그 맵시있는 윤곽은 하이브 꼭대기의 빛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코로누스 반중력-수송선Coronus grav-carrier. 그것은 발도르에게서 특별한 임무를 직접 명받고 헤게몬의 탑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 그늘진 수송칸에는 한 명의 전사가 앉아있었다. 그는 황금색의 투구를 양 손으로 붙든 채 그 순간까지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사우Nas'au 이래로 우리는 테라를 위해 싸워왔다.” 전사의 복스-링크vox-link를 통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듣는 목소리였다.
그는 에메랄드처럼 선명하고 밝은 녹색의 두 눈으로 시선을 들었다. 수송칸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빛과 공기가 들어왔다.
“무슨 일을 해야만 하는지 알고 있겠지?” 목소리가 물었다.
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임무는 잘 알고 있네.”
“그들을 찾게, 타기오말키안Tagiomalchian.”
타기오말키안이 투구를 쓰자, 망막 디스플레이를 가로질러 시스템의 소나기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는 자신의 센티넬 블레이드와 스톰 실드를 갖추고 서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갑주에 모노필라멘트 철선을 부착했다.
그것은 수송칸에 달려 길게 풀려있었고. 자기-잠금장치mag-locked에 의해 둔탁한 텅 소리와 함께 오라마이트 갑주에 고정되었다.
타기오말키안은 입을 벌리고 있는 수송칸의 문으로 다가갔고, 그의 걸음에 맞춰 철선이 풀어졌다.
그가 문끝에 서자 망토가 바람에 휘날렸다. 그리고 매연층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의 투구 렌즈 뒤에 있는 두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그들을 찾아내겠다.” 그는 어둠속으로 발을 딛기 전에 속삭였다.
---------------------------------
* 원문은 '주님', '주인님'이라는 뜻의 Dominus인데, 저번에 나왔던 검투사 양성소ludus를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함. 대충 고용인으로 옮김.
* 원문은 Dah. 처음엔 대충 엉?하는 추임새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주인공이 베줄라Vezulah를 베즈Vez라 부르듯 다렌Dahren을 Dah라 부르는 듯. '다'라고 옮기기 뭐해서 그냥 다렌으로 함.
* 원문은 Maw. 구렁텅이로 의역했었는데, 대문자로 계속 나오는게 대충 Swathe 판자촌의 별칭내지 멸칭인듯.
* 원문은 slipped, fresh slip 등 인데, 익숙한 플래쉬백으로 옮김. 대충 PTSD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특정상황을 떠올리며 발작하는 것.
* 원문은 unrefined alc-grain...정제안한 알콜-곡물. 밀주로 번역.
* 원문은 kiseru. 뭔가 했는데 일본식 가늘고 길쭉한 담뱃대인듯. 아마 서양얘들은 대체로 구경이 큰 것들 혹은 곰방대급으로 짤막한 담뱃대를 쓰다보니 이국적인 사례를 가져온 듯.
혹은 샐맨과 불칸에 일본 무사를 연관시키는 닉 카임의 취미일지도. 일단은 떠올리기 쉽고 정확히 들어맞는 장죽으로 옮김.
통합의 꿈 - 3
아비쓰나가 불타고 있었다. 연기가 시야를 가리고 있어 보기 어려웠지만, 그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비쓰나 안에 있는 병사들의 살점이 타는 냄새, 석벽이 업화속에서 구워지며 갈라지는 소리, 그리고 날카로운 비명 소리들. 통합이 도래했다.
두터운 재들이 거대한 요새 바깥의 킬링 필드를 가로지르며 흩날렸다. 그곳은 죽은 대공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요새로부터의 출격은 우리의 포위망을 돌파하는 데 실패했고, 그들은 우리의 공성 포대까지 닿지 못했다. 제국군 포병대 역시 보이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포격을 퍼붓고 있었다. 너무나 격렬한 음악이었다. 내 심장은 그 음악소리에 맞춰 뛰었고, 그 우레와도 같은 선율로 솟구쳤다.
우리는 밀어붙이고 있었고, 더욱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아프릭*의 태양이 타올랐다. 나는 무거운 갑옷을 입고 더위에 시달리고 있었고, 피부에서 타고 올라온 열기로 내 바이저에는 김이 서렸다.
베줄라는 근처에 서서 돌격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는 썬더 리전으로부터 더 큰 분노를 이끌어내는 중이었고, 열기를 더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아군의 반중력 함선들을 뒤에 남겨두고 달렸다. 끊임없는 사격으로 볼터가 뜨겁게 달아 있었다.
탄환 한발이 내 견갑에 부딫혔다. 갑옷을 관통한 그것은 피부에 박혔다. 나는 으르렁거렸고, 고통을 억누르기 위해 분노를 이용했다. 그리고 번개의 군기를 보았다. 연기속에서 내 바로 앞을 제외하고 볼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군기 주변에서 황제폐하가 싸우고 있었다. 비록 그분은 보이지도 않았고 떨어져 있었으나, 나는 기운을 차렸다. 잠깐 동안 연기가 옅어졌고, 나는 회색 사이에서 황금빛이 번뜩이는 것을 발견했다.
“저기다,” 내 뒤에서 가이록의 목소리가 말했다. 내팔에 닿은 그의 장갑이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걸 느꼈다. “커스토디안들...사람의 탈을 쓴 사자들.”
“그렇다더군.”
“저치들한테 썬더 리전이 싸우는 방식을 보여주자고!”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이가 훤히 드러난 그의 미소를 보기 위해 돌아보았다.
연기가 다시 커스토디안들을 삼켜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살육기술을 감탄하며 보고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러지, 형제!”
가이록은 연기를 가르고 우리에게 날아오는 총알에 아랑곳않고, 크고 대담하게 웃었다. 그는 잿빛 속으로 몸짓했다.
"그럼 저기 네 솜씨를 보여줄 기회가 있다구!"
북쪽 탑이 무너지는 걸 알리는 깊고 크게 울리는 붕괴음이 들렸다.
“크레틴 대공의 목구멍에 글라디우스를 박아주는 거야, 어때, 다렌?”
그리고 우리는 베줄라가 내린 새로운 돌격 신호에 따라 전 부대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크레틴 대공의 이름을 알긴 하나, 가이록?” 내가 물었다.
가이록은 고개를 저었다.
“하찮은 남작들, 올리가르히들.... 그리고 군벌들은 너무 많아. 이름이 뭐 대순가? 모두가 무릎을 꿇고 통합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죽게 될 거야. 지금 우리는 그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는 거지.”
북쪽 탑이 천천히, 멈출수 없는 기세로 무너지고 있었다. 탑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때 마다 검과 같이 연기를 가르며 허물어지고 산산조각났다.
마침내 그 충격이 대지를 강타하자 지진이라도 일어난것처럼 전장이 흔들거렸다. 그로 인해 거대한 연기가 흩어지자 우리의 적들이 드러났다.
놋쇠 흉갑 아래 회색 제복을 입고 꼬챙이 달린 투구을 쓴 그들은 창백한 얼굴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은 결의에 차 보였으나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열을 갖추고 늘어서서 신중하게 조준을 하고있었다.
산발적인 사격이 아비쓰나의 벽에 난 돌파구로부터 뿜어져나왔다. 주로 카빈과 기이한 에너지포들이었다. 방패벽을 갖추고, 우리 부대는 진격했다.
“사냥 시작이다!” 가이록이 포효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전투에 관한 열정이 내게 옮는 것을 느꼈다.
나는 벽에난 돌파구를 재빨르게 통과한 후, 무너진 돌무더기와 그 아래 갇힌 이들을 뛰어넘어 아직 항전하는 자들을 향해갔다.
고함을 지르며, 나는 소총수의 머리를 베었다. 나는 고함을 지르고있는 가이록을 슬쩍 보았다.
"아프릭의 태양은 이 돌파구 속에서 더 뜨겁구만! 안 그런가, 다렌!"
그의 검은 우리들 중에서 가장 붉었다. 우리의 돌격은 수비자들을 학살했다. 그들의 대열은 흔들리더니, 곧 붕괴했다.
이윽고 나는 베줄라가 함성을 지르는 것을 들었다. 나팔부는 소리가 들렸다. 승리가 가까웠지만, 피가 흐르는 것은 한참 계속될 것이었다.
나는 한번의 찌르기로 두놈을 검으로 꿰어 두명을 죽였지만, 시체가 내 팔을 끌어내리는 바람에 머리에 비스듬히 한방을 맞았다. 내 투구에 금이 가는것을 느꼈다. 투구가 내 목숨을 구했지만, 현기증이 날 무릎꿇게 만들었다. 나는 피를 퉤하고 뱉어 고통과 메스꺼움을 떨쳐냈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사일로Silo에 있는 나 자신과, 건장하고 반팔 갑옷를 걸친 전사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프릭의 태양은 사라져 있었으며, 그 자리를 Swathe 아랫동네 선술집*의 어두컴컴함이 대신하고 있었다.
전사는 흉터가 새겨진 대머리에 우락부락한 외모였으며, 쇠갈고리를 지니고 있었다. 쇠갈고리는 급조된 무기처럼 보였다.
한 때 그가 입고 있었던 파워 아머는 없었으며, 징박힌 가죽 쇄갑이 그것을 대신하고있었다.
"가이록..." 나는 그의 이름을 불분명한 발음으로 말하며, 내가 타리가타의 거주지를 떠났을 때와 지금 이 순간 사이의 기억의 파편을 짜맞추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려했다.
나를 때려눕히는 대신, 가이록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깜빡거리는 조명에 그의 피부가 붉게 빛났다.
"일어서라, 형제." 그가 말했다. 그의 얼굴에 뿌려진 피가 말라붙어있었다. 가이록의 목에는 혈관이 솟아있었고 그의 숨결은 흥분으로 거칠었다. 그가 얼굴에 띄운 하얀 초승달같은 소리없는 웃음은 억지로 지은것처럼 보였다. 고통스러워 보였다.
“가이록,” 내가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며 다시 말했다. 내장이 드러나고 찢겨진 시체들이 주위에 가득했다. 모두가 사일로의 불쌍한 단골들이었다. 묵직한 피의 악취와 달콤하고 농밀한 알콜냄새가 섞여있었다. 술집 바닥은 그 냄새로 넘쳤다.
“네가...네가 이걸 한 거냐, 가이록?” 나는 칼집에서 짧은 검을 조금 뽑으며 그것의 안심이 되는 손잡이를 느끼며 물었다.
가이록은 한번, 그리고 다시 한번 눈을 깜빡였다. 그의 두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땀이 그의 피부에 맺혀있었다. 나는 전등 아래에서 그의 땀방울이 번들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의 웃음은 찌푸림으로 변했고, 그것은 마치 미친 야수가 자신의 병을 이해하여 애쓰는 것만 같았다. 내가 저 운명을 맞이하기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가이록이 쇠갈고리를 강하게 쥐었고, 내 몸이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지금껏 건강했다. 정신과 의식 모두가 강인했다. 나는 내 앞에있는 남자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어디에 있나, 가이록?" 나는 피를 무시하려고 하며 물었다.
나는 그가 이렇게나 나약해진 것을 본적이 없었다. 가이록은 아비쓰나에서 성벽의 돌파구를 사수했었다. 그는 핵무기가 비처럼 쏟아지던 시비르 얼음 평원에서도 싸웠었다.
"아프릭의 태양은 이 돌파구 속에서 더 뜨겁구만, 다렌,"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고, 그의 말은 예전에 내게 말했던 것들의 흐릿한 메아리였다.
"여기는 아비쓰나가 아니다, 형제. 가이록... 어디에 있는거냐? 생각을 해봐라."
그의 시선은 이리저리 떠돌더니, 시체들을 훑었다.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시비르... 아니야... 흐음...." 그의 웅얼거림이 이해가 안될 지경까지, 망가진 이성이 쏟아지는 걸 막기라도 하듯 손을 머리에 대고 눌렀다.
그러더니 그는 갈고리를 쥐고 나에게 다가왔다. 눈은 풀려 있었고, 입에는 거품을 물고 있었다.
"통합을!" 그가 외쳤다. 간신히 알아들을 수준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승리의 외침만큼이나 절망적인 신음소리였다.
나는 내리쳐지는 일격을 내 팔뚝으로 막았지만, 가이록의 힘은 맹렬했다. 나는 다른 한 손으로 짧은 검을 뽑은 후 그것을 형제의 가슴팍 깊이 쑤셔넣었다.
처음에 그는 몸부림쳤다. 광기가 그에게 힘을 주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찌르고 또 찔렀다. 피와 내장이 더러운 바닥에 뿜어져 나왔다. 가이록은 흐느적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의 몸을 조심스럽게 안아 그가 바닥에 엎어지는 걸 막았다.
가이록을 그 자신의 광기로 인해 사지가 조각난 시체들 한 가운데 눕힌 후, 나는 부드럽게 검을 검집에 넣었다.
가이록의 입술에서 피거품이 일었다. 그 모습은 내게 카베를 상기시켰다.
그는 다시 눈을 깜빡였고, 나는 그의 두 눈에 제정신이 약간 돌아오는 걸 보았다.
“우린...살아 남아서는...안 됐어.”
그의 마지막 생명은 곧 숨을 거두었고, 나는 그가 완전히 죽을 때까지 그를 안고 있었다. 피가 그의 군단 문신을 가리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닦아냈다. 더 이상 고개를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카베를 알고있었고, 검형제sword-brother*로서 그의 곁에서 싸웠었다. 하지만 가이록은 내 친구였다. 나는 그가 떠나버린 것을, Swathe의 한 더러운 술집에서 숨을 거둔것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를 위한 명예는 어디있지?” 나는 어둠에 대고 물었으나, 침묵뿐이었다.
그 때, 언젠가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너무 오래 살았어.
나는 일어섰다. 슬픔으로 몸이 무거워진채로, 가이록을 등에 업었다. 그를 여기에 두고 떠나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렇게는 아니었다. 무언가 우린 잘못되었다. 나는 타리가타가 무엇을 해야할지 알기를 바랐다.
타기오말키안은 매연 구름을 뚫고 강하했다. 모노필라멘트 철선이 그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있었다. 맨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철선은 가늘었지만, 그의 중량의 수 배를 감당할만큼 튼튼했다.
수송기에 매달려가는 동안, 위장 망토가 타기오말키안을 시야에서 숨겨주고 있었다.
그의 망막 디스플레이에 카운터가 점점 내려갔다. 카운터가 50피트로 된 순간, 그는 자기 잠금 장치를 해제해 남은 거리만큼 직접 낙하했다.
그의 갑옷에 내장된 작은 반중력 펄스 장치가 그가 착지할 때 받을 충격을 완화했다. 그는 웅크린 자세에서 일어나 앞에 있는 거대한 판자촌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착지 했다. 아직 발각 당하지 않은 상태다.”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투구에 내장된 소음 상쇄 장치로 인해 완전히 차단되었다.
아까의 목소리가 코로누스 수송기를 통해 답했다. 오직 타기오말키안만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목표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복스 너머에서 목소리가 말했다. 타기오말키안은 망막 렌즈를 통해 지형위로 덧씌워진 홀로리스 도식을 보았다. “자네의 사냥감은 Swathe 안에 있다.”
“진행 방식을 요청한다.”
“은밀하게.”
“기간은?”
“발각 되지 않는 한, 가능한 한 오래.”
“사살인가, 포획인가?”
“사살하게. 그리고 모든 흔적을 박멸하도록.”
“확인했다. 자료 입전을 요청한다.”
수 초가 걸렸다. 작은 신호가 홀로리스 도식위로 나타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깊군.” 타기오말키안이 중얼거렸다.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으나 소음 상쇄 장치는 그의 목소리를 복스-오디오 너머의 청자에게 강조시켰다.
“그곳은 토끼굴이다, 타기오말키안. 그리고 그 안에는 쥐새끼들이 도사리고 있지.”
“그렇다면 파고들어가는 게 제일 낫겠군.”
하수조 일꾼들이 Swathe의 외곽에서 응고되기 시작한 화학성 혼합액들을 퍼올리고 있었다. 그들의 그물과 갈고리들이 부유물들을 당기고 건져냈다.
저질 담배를 피우고 암에 걸린 폐로 기침을 뱉으면서, 그들의 피에 흐르는 독소로 천천히 죽어가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황금의 전사가 그들의 한 가운데를 지나쳐 성큼성큼 걷는 데도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가이록은 무거운 짐이었고, 투기장에 이르기까지는 수 시간이 걸렸다. 투기장 주변에 도착한 순간, 나는 연기를 보았다. 타리가타의 거주지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가이록의 시체를 내려놓은 후, 나는 검을 뽑아 들고 달렸다. 나는 이게 라딕 클레브의 소행일 것 이라고, 내가 그의 크로노-검투사에게 한일에 대한 보복라고 생각했다. 판자촌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이것이 복수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광기가 이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사체들을 발견했다. 내장이 사라져있거나, 머리가 없거나 혹은 토막난 사체들이 그곳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마치 도살자가 남긴 흔적처럼 찢겨 나가 있었다.
내 관자놀이 아래에서 압박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손으로 머리를 눌렀다. 고통이,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바다 속으로 빠트리겠다는 것처럼 나를 밀어넣겠다고 위협했으나, 나는 그것에 저항했다.
타리가타의 거주지에서 나는 연기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어느것이 아비쓰나의 것이고 어느것이 현실의 것인지 구분하려 애썼다.
오한이 내 얼굴을 따끔거리게 했지만, 나는 Swathe의 공기가 무덥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시비르 얼음 평원이 기억났고 투하되는 핵무기들을 보게될까봐 시선을 들 수가 없었다. 곧 나는 아라랏에 있게 되었다. 아릭 타라니스가 번개의 군기를 들어올린 순간 함께 고함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하이 브라질*, 우르쉬 그리고 알비아에 있게되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통합의 꿈은 끊임없이 떠올랐고, 나는 그것들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
끝내 나는 내 검에 집중했다. 그것을 몸에 꽉 조여매고 그것의 견고함을, 그것의 영구함을, 그것의 현실감을 생각했다.
땀흘리고 피부가 열기로 화끈거리는 채로, 나는 다시 꿈에서 벗어났다. 나는 무릎 꿇고 있었고, 눈앞은 내 토사물로 웅덩이져 있었다. 토사물 맛이 나는 입안의 침을 뱉은 후 나는 타리가타의 거주지로 서둘러 향했다.
내가 문을 걷어참과 동시에, 열과 연기가 나를 괴롭혔다. 판자촌을 가로질러 미친 듯이 달려오는 동안 베줄라는 보이지 않았다. 만약 내가 그를 이 곳에서 찾게 된다면, 그가 가이록처럼 피에 미쳐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숨을 참은채 팔뚝으로 얼굴을 가리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열기 때문인지 혹은 이 난장판 속에서 누군가 이전에 허우적거려서인지 몇몇 선반들은 쓰러져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힘껏 차버리고 다른 하나를 뛰어넘고 나서야 항상 있던 자리에 있던 타리가타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는 연기를 들이마셔서 질식해가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려움이 그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그는 애처롭고 불쌍한 소리로 울었다. 나는 서둘러서 그의 연약한 몸을 내품으로 끌어당겼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바늘처럼 내 피부를 긇었다. 그는 저항했지만, 그것은 쇠약한 어린아이의 힘으로 하는 저항이었다.
“가만히 있어라,” 내가 그에게 경고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다 이 똥구덩이에서 죽게 될거야.”
그의 몸부림이 멈췄다. 내 목소리를 들어서인지 아니면 여력을 다 써버려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불길은 커지고 있었고, 천장과 벽을 가로지르며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산사태처럼 퍼지고 있었고, 닿는 모든 것을 굶주린 듯 집어삼켜버렸다.
나는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듣고서 플라스크들이 천천히 익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플라스크 안에 있는 화학성 혼합액들이 촉진제로 작용할 것이었다.
타리가타를 품에 안아 들고서, 나는 거주지의 뒷마당으로 곤두박질 친 후 뒷문을 걷어차고 반대편으로 나왔다. 간신히 6 피트 정도 멀어졌을 때 낡은 판잣집과 소각로가 폭발했다. 불기둥이 파편과 연기를 허공으로 날려보냈다.
사람들은 한명도 모여들지 않았다. 다들 죽거나 숨어있는 상태였다.
나는 타리가타를 공터로 옮긴후 낡아빠진 의자에 놓았다. 팔걸이는 사라져 있었고 인조 가죽 장식은 벗겨져 아래의 곰팡이 핀 스펀지가 드러난 상태였다.
그의 호흡은 가빴고 피부는 너무 창백해서 나는 그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베줄라는 어디 있지?” 나는 그에게 단호히 물었다.
노인네의 머리가 옆으로 축 늘어지자 나는 그 뺨을 살며시 움켜쥐고 내 얼굴을 향해 돌렸다.
“타리가타, 넌 죽어가고 있다. 미안하다. 하지만 난 알아야만 해.”
갑작스러운 절박함이 그를 사로잡았는지 그가 나에게로 튀어올랐다. 그의 입이 움직이고 있었으나 첫마디를 뱉지 못해 애쓰고 있었다. 나는 몸을 숙였고, 노인네가 내 귀에 사실을 속삭일 수 있도록 했다.
“그가...그가 오고 있어.”
그러더니 그는 뒤로 푹 쓰러졌다. 공기빠진 허파처럼 축 처지더니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오지 않아. 베즈는 가버렸어.”
나는 시선을 내렸고 그가 라드 피스톨을 내 손에 밀어 놓은 것을 알았다. 나는 그것을 나 자신에게 사용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베줄라에게 사용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챙겨 내 허리띠에 달린 빈 권총집에 꽂아놓았다.
나는 타리가타의 빈 눈구멍을 감싸기 위해 갑옷 아래의 옷 조각을 찢었다. 눈가리개를 묶은 후,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의 이마 위에 내 손을 올렸다.
“이 망할 노인네, 녀석을 막으려 했었구만?”
일어선 나는 타리가타의 메마른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죽음이 그를 이토록 초라하게 만들어버렸다.
"이건 이제 내가 지고갈 짐이다. 내가 그걸 막겠어. 내가 끝내겠다."
타기오말키안은 불가시상태로 Swathe의 좁은 골목과 터널을 가로질렀다. 그는 신속하게 움직였고, 그의 망막 렌즈에서 반짝이는 위치 신호가 매 초마다 가까워지며 커지고 있었다.0
멀리서, 검은 연기 기둥이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며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는 사냥감에 대한 생생한 단서를 이제는 납골당으로 변모한 선술집에서 처음으로 발견했다. 저품질 알콜과 차갑게 식은 내장에서 나는 자극적인 악취가 그의 콧구멍을 찔렀다. 그는 그 악취를 계속 맡았다.
에포로이*로서 그는 단서를 찾는 훈련을 받아왔다. 그는 초인의 냄새를 맡았고, 내부 복스와 교신했다.
"군단일수도 있다." 그가 말했다. "숙청에서 빠져나간 자들 말이지."
"신중히 진행하게"
타기오말키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누더기 시신들 중 하나를 뒤집기 위해 무릎꿇었다. 망막 렌즈 뒤 그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흥미롭군...” 그 화상 자국은 마치-
그를 괴롭히던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타기오말키안을 뒤돌게 만들었다. 두발이 땅을 박찬 순간 그는 간신히 손으로 검을 집을 수 있었다.
-------------
* 원문은 Afrik. 현대의 아프리카.
* 원문은 dive bar. 뭐라 직역하기 어려워서 싸구려 술집, 지하 술집, 포장마차, 노포 등으로 하려다 외국에 아무리봐도 전부 아닌 다이브 바가 보여서 적당히 어감을 살린 선술집으로 옮김.
* 원문은 Hy Brasil. 브라질 고원 지대쯤 되나?
* 원문은 Ephroi. 아마 Ephoroi를 오기한거 같음. 어원 자체는 스파르타의 Ἔφορος로 추정. 역감시, 기밀작전, 모의 공격, 암살 등을 수행하던 조직(Chamber).
헤러시 이후 사라졌으나, 대신 만인대는 암살청을 동원할 권한을 가지게 됨.
통합의 꿈 - 4 (完)
나는 베줄라가 남긴 흔적을 따라갔다. 그것은 어렵지 않았고, 사실 그의 정신의 멀쩡한 부분은 내가 그를 찾아주길 바라는게 아닐지 궁금했다. 내가 그를 끝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내가 그를 끝낼 수 있기를, 그리고 가이록과 베줄라를 변하게 만든 광기가 나 자신마저 변하게 하는것을 늦출 수 있기를 나는 바랐다.
나는 타리가타를, 도망치던 삶 끝에 반쯤 질식하여 죽어가던 노인네를 떠올렸다. 베줄라가 타리가타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주 플래시백을 일으키긴 했지만, 베줄라는 그 노인네에게 손을 대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손댔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을 수도 있었다. 그 꿈들, 나는 그것들을 느꼈었다. 꿈들은 선명하고, 설득력 있었다. 과거의 영광에 대한 열망은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내가 Swathe를 가로질러 달리는 동안, 주민들로부터 두려움에 찬 시선을 받았다. 이 깊은 곳에 남아있는 쓰레기들은 그저 비참하고 더러운 삶을 살도록 자신들을 내버려두길 원했다.
몇몇 이들은 무기를 휘두르며 자신들의 초라한 삶을 지킬 준비를 했으나, 그것은 공허한 위협일 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가축우리같은 피난처에서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은 채로 있었다. 마치 폭풍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Swathe의 오래된 구역에서, 나는 돌계단에 새겨진 군단의 표식을 발견했다.
낡은 번개 문양은 나를 납골당으로 내려가도록 이끌었다. 나는 이 장소를 알고 있었다. 이곳은 Flood라고 불리는 곳으로, Swathe에서 가장 깊은 곳이었다. 때를 탄 무늬의 오래된 기둥들이 구부러진 아치형 천장으로 뻗어있었다.
한 때 이곳은 아름다웠으나, 여느 것들이 그러하듯 세월이 그 영광을 앗아가 버렸다. Flood의 일부는 위에 쌓인 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있었다. 나는 잔해 더미들을 넘고 불룩한 포대 자루를 치워가며 길을 냈다. 나는 이곳에 거의 오지 않았었다. 별 이유는 없었지만, 문득 나는 베줄라는 이곳에 얼마나 왔었을지 궁금해졌다.
"이곳이 우리의 마지막 전장인가, 형제여?" 나는 어둠 속을 향해 물었다. 그리고 대답이 돌아오자 놀랐다.
"난 이미 마지막 전투를 치렀어, 다렌."
나는 납골당의 굽은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는 한 손으로 배를 감싸 내용물이 나오려 하는걸 막고있었다.
베줄라의 떨리는 손가락 사이로 무언가 축축하고 검은 것이 보였다. 그의 부서진 도끼가 몸 옆에 놓여 있었고, 도끼날은 산성부식되어 두동강나 있었다.
"베즈..." 나는 그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머리 위 인광등의 깜빡이는 조명 속에서, 그는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무장은 하고 있나?" 그가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얼굴을 찌푸리며 뽑아든 검과 등에 맨 대검을 손짓하던 차에, 나는 베줄라가 눈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윳빛 광택질이 그의 두 눈을 덮고 있었다. 그리고 화상자국들이 눈가와 얼굴 곳곳에 있었다.
"산성 침..." 그가 내 침묵의 이유를 정확히 예측하며 말했다. "놈들이 그런 걸 할수 있다는 것을 잊고있었지."
그는 웃었지만, 그것 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분께선 그들에게 모든 것을 선사하셨었지, 안 그런가. 그리고 우리는 썩고 곪도록 내버려두셨고."
눈이 보이지 않아 더듬거리면서도, 그는 손을 뻗어 내 팔을 잡았다.
"우리는 이토록 오래 살아남아서는 안 되었어."
나는 그의 머리를 밝은 쪽으로 두어 얼굴에 있는 끔찍한 부상을 살펴보려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이 수치스럽기라도 한듯 이에 저항했다.
"내장의 상처가 치명적이야," 그가 낮게 말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터져나온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누가 이런 짓을 한거지?" 나는 그를 놔주며 말했다. 나는 어둠 속을 살펴보았으나, 숨어있는 공격자는 보이지 않았다.
"놈들은 우리들 사이에 있었다, 다렌." 그가 말했다.
"Swathe 안에 숨어있었던 거지. 나는 놈들과 싸웠다. 놈들은 도망쳤고 나를 이곳으로 유인했다. 그리고 나를 여기서 죽게 내버려뒀어."
그는 얼굴을 찡그렸고, 나는 베줄라의 목숨줄이 팽팽히, 가늘게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누구지, 형제여? 누가 우리사이에 숨어있었지?"
"표식, 새빨갛고, 낙인 같은..." 그는 자신의 왼쪽 뺨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은 피범벅이었다. “그들은 그의 이름을 말했어. 말하기를..."
나는 그의 갑옷 소매를 쥐고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말해라, 형제! 네 복수를 하게 해다오."
"말하기를...그가 오고 있다고 했어."
베줄라는 길게 떨리는 숨을 내쉬었고, 곧 숨을 거뒀다.
내가 틀렸었다. 베줄라는 판자촌의 사람들을 학살한 것도 아니었고 타리가타를 죽게 내버려둔 것도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의 짓이었다.
고개를 숙인채 나는 두눈을 감고 다리에 닿아있는 라드 피스톨 손잡이를 느꼈다. 나는 그것을 뽑을까 고민했다. 내 손가락들이 손잡이에 가까워졌다. 단 한발, 발사되기만 한다면. 왼쪽 관자놀이에 쏘기만 한다면.
나는 두눈을 뜨고 권총에서 손을 뗐다.
"통합을 위해..." 나는 중얼거리며 내 군단 반지를 베줄라의 무릎 위에 놓았다.
"내부의 적." 표식. 이름. 베줄라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었고, 그 대부분은 타리가타가 해준 것이었다. 전쟁이 오고 있었다. 누군가는 전쟁이 이미 도래했으며, 반역자들이 우리 사이에 있다고 말했다.
희미하게 금속이 부딫치는 소리에 나는 시선을 들었다.
전투의 소음을 쫓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납골당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타기오말키안은 금이 간 오라마이트 갑옷 아래의 고통을 무시한채, 다리를 절며 납골당 안으로 들어갔다. 찢겨진 위장망은 그가 지나쳐온 어딘가에 있었다. 망토는 사냥감에게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사냥감은 통상적이지 않은 수단으로 그를 감지했다. 사냥감의 피가, 혹은 피처럼 사냥감의 핏줄을 흐르던 무언가가 그의 센티넬 블레이드의 날끝에서 번들거렸다. 그가 쥐고있는 무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등에 매고 있는 방패도 그러했다.
그리고 그는 그 생물이 그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놈 역시도 부상을 입었다.
"내 위치를 표시해줘," 그가 복스에 대고 말했다.
“부상을 입었나 보군.”
타기오말키안은 이를 악물었다. "표시, 해"
잠깐의 정적은 또 다른 질문이 올것을 암시했다. 그러나 질문은,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가까운가? 타기오말키안.”
"그렇다."
“놈들인가?”
알파 리전이 황성(Throneworld)에 가한 공격은 소수만이 알고 있었다. 결국 그 공격은 방지되었고, 즉각적인 위협은 무력화 되었다. 그러나 걱정거리는 남아있었다.
'사고'들이 있었다. Plaintive Reach 감시소에서 일어난 사고는 숨기기 어려운 것이었다. 거리마다 소문들이 새어나가고 있었다. 광기가 테라를 휩쓸었다. 워마스터가 오고 있었다. 워마스터의 동조자들이 대중들 사이에서 날뛰었다. 광신도들이었다. 정화가 명해졌고, 다가올 타락에 맞서서 정화의 불꽃이 가해졌다.
그 타락의 징조가 타기오말키안의 앞에 서있었다.
"놈들이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복스를 껐다.
타기오말키안은 지하 홀의 깜빡이는 조명 밑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하 터널이 그를 이곳으로 인도했다. 얼어붙을 늦한 냉기가 갑옷을 뚫고 그를 어루만졌다.
홀의 본래 용도는 세월과 새로이 더해진 물건들에 의해 모호해져 있었다. 녹슨 구리관들로 보아 어쩌면 오래된 목욕탕일지도 모르지만, 오로지 일부만이 온전한 상태였다. 입을 벌리고 있는 그리폰 모양의 수동식 펌프는 커다란 욕탕에 물을 채웠을 것이었으나, 부식으로 인해 멈춘 상태였다. 벗겨진 황금세선들은 신화속 바다 괴물들을 묘사하고 있었으나, 그 예술적인 그림들은 왜곡되어있었다.
더 오래되고 원시적인 무언가가 지금 이 자리에 서있었다. 횃불이 쇠받침대 위에서 활활 타오르며 고기와 쉰 젖의 역겨운 냄새를 풍겼다.
물이 아닌 피가 수로의 가장자리를 따라 흘렀고 무언가 검은 물질로 조잡하게 상징들이 그려져 있었다.
거품진 피가 욕탕의 가장자리를 따라 흘렀고, 무언가 타르 같은 검은 물질로 조잡하게 상징들이 그려져 있었다.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우거진 잡초처럼 한곳에 모여있었다. 그것들의 밀랍 기둥에서는 동물성 지방의 악취가 풍겼다.
타기오말키안은 검을 들어올렸다. 금박을 입힌 소용돌이 무늬와 화려한 장식의 음각이 번뜩였다. 동력장이 칼날을 따라 파지직 거렸다.
몇 걸음 만에 그는 낡은 욕탕의 연단으로 들어섰다. 때 묻은 돌 위로 시커먼 무언가가 흐른 자국이 있었다. 그것은 여기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타기오말키안의 피를 맛본 이후 계속 여기서 기다렸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해진 검은 망토가 그것의 견갑위로 둘러져 있었고, 망토는 잊혀진 바다의 색을 한 비늘 갑옷을 가리고 있었다. 기묘한, 생물의 가시같은 것들이 망토의 천을 뚫고 삐져나와있었다. 그것은 무기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것의 손가락끝에는 타기오말키안의 피를 맛본 긴 발톱들이 달려있었다.
그것은 한때 군단병이었으나, 이제는 무언가 다른것이 필멸의 육체를 뒤집어 쓰고 그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역겨운 놈," 타기오말키안이 단언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계단을 침착하게 걸어 올라갔다. 그의 시선은 그 과거의 군단병에게 머물러 있었지만, 놈의 곁에 있는 로브를 입은 자들도 인지하고 있었다. 여덟명의 남녀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후드를 쓰고 있었고, 욕탕에 있는 여러 시체들 위에 서 있었다. 배수구에는 굳은 피가 엉겨있었으며, 배수구의 금속망에 달라붙은 피는 모서리의 녹을 시커멓게 만들었다.
로브을 입은 자들은 뺨에 히드라의 낙인을 제각기 지니고 있었고, 시신들 역시 그러했다. 자발적인 제물들이었다. 표식들은 찍힌 지 얼마 안되어 새것으로 보였다. 타기오말키안이 공격 받았던 선술집에서도 본적이 있는 것이었다.
의식의 원이 검은 타르로 그려져 있었다. 타기오말키안은 제물로 바쳐질 예정이었다.
황제의 피가 그의 혈관을 흘렀고, 그것은 강력하고 초인적인 것이었다. 이 타락한 생물들과 그들이 섬기는 존재에게 그것은 의미를 지녔다.
로브를 입은 탄원자들 사이에서, 선동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오고있다," 여인이 중얼거렸다. 마치 단순한 사실을 말하듯 아무런 열의도 없이.
"루퍼칼," 나머지가 화답했다.
"루퍼칼," 광신도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루퍼칼," 군단병이 다시 반복했다. 그는 상반된 음역의 두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타기오말키안을 향해 도약했다.
나는 금속이 돌과 부딪치는 충돌음을 들었다. 그리고 갑옷을 입은 몸이 더 크고 무거운 무언가에 의해 밀려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깜빡이는 횃불이 터널의 끝을 비추며 더 큰 방이 나올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또 다시 얼음 평원의 냄새를 맡고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옛 꿈들을 머리 한구석에 치워두려 애썼다.
이 길을 통해 Swathe로 들어온게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베줄라를 죽이고 타리가타를 죽도록 만들었다. 오직 나만이 그 빚을 되갚고 죽은자들의 복수를 할 수 있었다.
달리는 나의 허벅지를 라드 피스톨이 툭툭 쳤다. 쥐고있는 대검이 무겁게 느껴졌고,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도 늙은 근육은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고통을 무시하고 검의 역장을 작동시켰다. 역장이 타올랐다가 꺼졌다.
나는 달리면서 다시 시도했다. 아치형 입구를 지나 밝은 곳으로 들어설 즈음이었다. 역장이 깜박이다가 안정되었다. 칼날을 따라 달리는 화학적인 에너지가 마치 전류가 방금 혀에 흐른것처럼 내 입을 톡 쏘았다.
빛과 어둠의 경계선을 지나친 나는 황금의 전사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불가해한 어떤 존재가 단검처럼 긴 발톱으로 전사를 난자하고 있는 것도 보았다.
이름을 아는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 전사를 알고 있었다. 황제 폐하의 커스토디안이었다. 나는 통합 전쟁 동안 그들의 곁에서 싸웠었다.
내가 접근하자 커스토디안은 또 다른 적이라 생각하고 반쯤 몸을 틀었다. 그러나 내가 적이었다 한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무력했다. 그의 면갑은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그가 곤경에 처해 있음은 너무나 명백했다.
그 짐승, 반은 군단병이고 반은 돌연변이인 그 존재는 커스토디안을 마구 때리며 내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다.
피투성이 연단 위의 여덟 형체가 동시에 몸을 돌렸다. 그리고 로브를 젖혀 길쭉하고, 굽은 칼을 드러냈다. 광신도들이었다.
타리가타, 망할 늙은이. 결국 네가 옳았어...
울부짖는 광인들. 그들이 내게 덤벼들고 있었다.
나는 첫 번째 놈의 배를 내 검끝으로 꿰뚫었다. 역장이 놈의 몸을 찢어 날려버렸다. 피부와 뼈 그리고 내장들이 증발했다. 다른 놈들은 피가 튀었음에도 기죽지 않아보였다.
내가 두번째 놈의 팔을 베어버린 순간, 나는 내 상완을 파고드는 칼날을 느낄수 있었다.
칼날이 깊게 파고들자 나는 고통의 으르렁거림을 억눌렀다. 절대 약점을 보이지 말 것. 투기장이 내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또 다른 칼날이 내 등을 찔렀다. 나는 포효했다.
그들이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나는 통합의 꿈들이 내 정신을 잡아당기는 것을 느꼈다. 만약 내가 지금 이순간 꿈에 휩쓸려 버린다면, 나는 죽을 것이고 커스토디안 역시 죽을 것이었다.
힘이 빠진 채, 그는 반격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짐승은 커스토디안을 사냥에서 잡은 먹잇감마냥 들이받고 있었다. 몇분만 더 있으면 싸움은 끝날 것이었다.
나는 팔을 휘둘렀고, 단단한 무언가를 때린 것을 느꼈다. 뼈가 부숴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광신도들 중 하나가 부러진 창대처럼 날아갔다. 놈은 내 시야 밖의 어딘가에 쳐박혔다.
한손에 대검을 쥔 채로, 나는 다른 한손으로 짧은 검을 뽑아 다른 한놈을 그대로 땅에 꿰어버렸다. 광신에도 불구하고, 그 자식은 울부짖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팔다리 일부가 없는 광신도를 끝장냈다. 내 박치기는 그년의 머리를 알을 깨트리듯 부숴버렸다.
거칠게 휘두른 대검은 또 다른 녀석에게 죽음을 가져다 주었다. 내장이 터져나왔고 그 내용물들이 장기들과 함께 땅에 흘렀다. 한놈을 발로 밟아 바닥에 찌부러트려 놓는 동안, 남은 둘은 그저 서있을 뿐이었다.
그 중 하나가 휘어진 칼을 휘두르며 돌진해왔다. 나는 사납게 발을 뻗어 그의 몸통을 힘껏 쳤고, 그 발차기는 놈의 갈비뼈를 뚫고 척추를 부러트렸다.
내 신발이 놈의 등을 뚫고 나와 나는 넝마가 된 시체에서 신발을 흔들어 털어내야만 했다. 추측컨데 지도자인 마지막 한 명은 나와 맞서는 대신 그녀 스스로 목을 그었다. 그녀의 몸뚱이는 연단에서 떨어져내려 빈 욕탕으로 추락해 아래의 다른 시체들 중 하나가 되었다.
짐승은 그제서야 내게 돌아섰다. 그리고 나는 그 시선에서 깊이를 알 수 없고 사악한 무언가를 보았다.
그리고 내 머리속에서, 나는 그것이 짐승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소한 자연의 순리 속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들었던 모든 이야기들, 테라로 닥쳐오는 어둠들, 제국보다 오래된 존재들과의 약속들, 나는 그것들을 믿게 되었다.
악은 우리 사이에 있었다. 황제 폐하의 질서에 근거한 통치를 거역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는 황제폐하를 섬겼다. 나는 언제나 황제 폐하를 섬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나의 맹세였다. 그것이 천둥과 번개의 맹세였다.
놈은 커스토디안을 한쪽으로 내동댕이쳤다. 질긴 고기를 팽개쳐두고 신선한 살육을 선호하듯, 그를 던져버렸다. 나는 검을 휘둘렀다.
"통합을 위해!" 나는 포효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인간과 짐승의 대결이었다.
놈은 전차처럼 들이받아 날 띄워 날려버렸다. 내 검은 거미를 닮은 견갑보다 겨우 몇배 튼튼할 뿐인 갑옷의 홈을 자르지도 못한 상태였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검은 묘비석처럼 무거웠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시비르 얼음 평원...
아비쓰나에서 흘러나오는 연기...
꿈을 떨쳐내려 애쓰며, 나는 날카로운 발톱을 간신히 쳐낼 수 있었다. 놈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공격을 받아낸 것만으로 내 어깨가 거의 나갈 뻔했다.
그러나 그것의 존재는...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더 깊은 불안감이, 신체적 고통 이상의 것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죽은 자들의 늙고 쉰 목소리, 아직 도래하지 않은 대학살의 환영이 느껴졌다.
내가 여기서 수치스럽게 죽는다면, 저 너머에 있는 존재에게 제물로 바쳐질 것이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고, 놈의 발톱이 도살자의 기분을 즐기며 내 살을 찢어 발기는걸 알아챘다.
나는 검을 휘둘렀고, 손 혹은 발톱을 베어냈다. 잘려나간 손은 땅에 툭 떨어졌다. 그리고 손등부터 떨어진 그것은 스스로 뒤집어지더니, 거미처럼 종종걸음치며 그림자속으로 사라졌다.
이토록 끔찍한 것들이라니, 나는 이런 것들을 본적 조차 없었다.
뒷걸음질 친 나는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육체와 정신이 닳아서가 아닌, 놈이 내게 입힌 상처에 의해서 말이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내게는 간신히 검을 들어 올릴 힘만이 남아있었다. 다른 손의 검은 떨어트렸다. 그 검은 거미손이 숨어들어간 그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짐승을 떼어놓기위해 맹렬하게 검을 휘둘렀다. 놈은 내 노력을 비웃었으며, 그 웃음 소리는 너무나 비인간적이라 내 목뒤의 털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본능인지 의도에 의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나는 허벅지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라드 피스톨의 그립을 느꼈다. 통합의 표식이 내 손바닥을 누르고 있었다. 순간 나는 권총집에 느슨하게 매여있던 그것을 발사 될지조차 모르는 채로 뽑아들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꽉 당겼다.
강렬한 방사능이 집중된 폭발이 짐승의 몸뚱이를 강타했다. 그것이 뒤집어쓰고 있던 필멸의 껍데기가 전율했다. 그것은 축 처졌고, 순간적으로 약해졌다.
그 순간 나는 모든 힘을 짜내 대검을 휘둘러 어깨, 몸통 그리고 목을 찍어냈다. 놈은 죽었어야 했으나, 그 대신 울음소리를 내며 비틀거릴 뿐이었다. 놈의 애처로운 비명 소리에 이가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나는 쓰러졌다.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실패를 뼈저리게 느꼈다.
"통합을 위해," 나는 침을 뱉었다. 가래에 피가 섞여있었다.
"통합을 위해." 커스토디안이 놈의 뒤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의 거대한 황금빛 검이 짐승의 머리를 둘로 쪼갰다.
다음으로 그 완벽한 검의 찌르기가 심장이 위치한 곳을 꿰뚫자, 짐승은 땅에 엎어졌다. 그것의 입부분의 그릴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났다. 섬뜩하고 비인간적인 소리였다.
타르성의 연기가 그것의 갑주 이음매에서 피어올랐다. 마치 산소결핍으로 꺼져가는 촛불 같았다.
"놈은 죽은 건가?" 나는 무릎을 꿇고 칼자루 끝에 힘겹게 몸을 기댄 채 물었다.
커스토디안은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의 경계하는 시선에서 심판의 저울질을 느꼈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의미로는, 그렇다. 그대에게 감사를 표하지..."
"헤룩," 나는 그의 머뭇거림을 통성명을 바라는 것으로 알아듣고 말했다. “다렌 헤룩이다.”
"썬더 리전인가?"
이번엔 내가 고개를 끄덕일 차례였다.
"그대와 같은 부류는 모두 죽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죽었다. 거의 대부분."
"타기오말키안이다. 내가 그대에게 빚을 졌군, 다렌 헤룩. 테라가 그대에게 빚을 졌다."
"그럼 당신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나," 나는 검을 집어넣으려는 타기오말키안을 멈추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타기오말키안은 나를 바라보았고, 그의 무표정한 면갑은 마치 동상처럼 감정을 읽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주 약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볼수 있었다.
죽음의 손아귀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을 때, 나는 꿈을 느꼈다.
처음엔 냄새와 맛이 느껴졌다. 이윽고 번개의 군기가 하늘을 향해 들어올려지며 승리의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라랏 산의 비탈에 서있었다. 내 옆에는 카베, 가이록 그리고 베줄라가 있었다.
현실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지만 나는 내 뒤에 선 타기오말키안의 갑옷이 부드럽게 철컹이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검을 높이 들어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게 명예로운 죽음을 선사해주게," 내가 말했다. 그리고 환호성이 더 크게 울렸다.
통합! 통합! 통합!
나는 기쁨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통합을 위해..."
그리고 검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오직 죽음으로만 의무는 끝이 난다.
최근 덧글